1920년대 일제의 민족분열통치로 친일파가 늘어나고 독립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어져 독립의 희망이 무너지고 있었다. 더욱이 일제는 더욱 강대국이 되어 다른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우리를 도와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제가 중국으로 침략하는 과정에서 만보산 사건(일제에 의해 발생한 우리와 중국과의 유혈 사태)으로 한·중 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더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 이가 바로 윤봉길 의사(이하 의사 생략)다. 윤봉길이 일제가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및 상해 사변 전승 기념식이 열리는 훙커우 공원에 수통형 폭탄을 던지면서 한·중이 연합하여 일제와 맞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대..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모든 것을 희생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도 정말 소수의 분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자주적인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바쳤던 수많은 위인 중에 우리가 잘 모르는 이종일이란 분이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사에서 이종일 선생(이후 선생은 생략)은 꼭 거론되어야 하는 분이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3・1운동 당시 수많은 민중에게 배부되었던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낭독하신 이종일은 한글 맞춤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15살에 상경한 이종일은 조선의 근대화에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수용을 주장하던 김윤식과 이상재를 만나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
진관사 태극기 20세기에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집에 게양하도록 가르쳤고, 모든 집마다 태극기는 어김없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은 태극기를 집에 게양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운동경기나 집회에서 옷과 수건 등에서 다양한 태극기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2002년 태극기의 품위를 손상할 수 있는 속옷과 양말과 같은 일회용품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태극기의 무늬와 모양을 분리해 사용 가능해지면서 온전한 모양이 아니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에게 있어 태극기의 분리된 모양은 아직까지 적응이 잘 안 된다. 이처럼 일상에서 우리와 늘 함께하는 태극기를 누가 만들었고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다...
통일신라가 변화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큰 인물이 등장했다. 후고구려의 궁예와 후백제 견훤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이 둘에게 모였다. 넓은 영토를 차지한 궁예와 가장 비옥한 지역을 차지한 견훤은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끊임없이 경쟁하였다. 특히 풍요로운 곡창지대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견훤이 새로운 사회의 주인이 되는데 있어 한발짝 더 가까이 있었다. 특히 서남해 바다를 장악하고 있던 후백제로 인해 후고구려는 중국의 왕조의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궁예는 903년 해상무역으로 바닷길을 잘 아는 왕건에게 금성을 정벌케했다. 후고구려(당시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의..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길로 전국 어디를 가도 화사함이 가득하다. 꽃길을 따라 찾아든 많은 사람들로 산천 곳곳에 생기가 감돈다. 수많은 꽃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곳이 섬진강을 따라 가는 하동이다. 넓지 않은 차도는 번잡하지 않았던 70~80년대를 연상시킨다. 운전을 하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굽이굽이 잔잔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중간 중간 고개를 내민 곳에는 섬진강 물길이 작은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강 너머로는 수줍게 울긋불긋한 자태를 내보이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들이 가득하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자연풍경이 아쉬워진다. 그럴 때마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에 차를 세워..
서대문독립공원에 가면 서재필 박사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공원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동상 주변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근처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동상 주변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이처럼 익숙하고 친근한 동상이지만, 정작 이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는 동상의 주인공이 서재필 박사인 것을 알지만, 정작 서재필 박사(이하 박사는 생략)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이도 적은 것이 사실이다. 서재필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7촌 아저씨 서광하에게 입양되어 일곱 살부터 서울에서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당시 서재필은 15살 연상이던 김옥균과 박영효를 만나 개화사상을 접하고 필요성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