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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식 경무관 동상


 

서울성곽길 1코스를 시작하는 창의문을 가기 전 자하문고개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최규식 경무관 동상입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를 알 수 있도록 자세한 안내문이 설치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성곽길을 걷기 위해 하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상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기에 바쁩니다. 가끔 연세가 있으신 분들만이 동상을 바라보며 옛 일을 회상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북에서 내려왔던 김신조 일당과 맞서 싸웠던 1.21 사태를 말입니다.

 

김신조가 누구냐? 김신조는 1.21 사태에서 유일하게 생포된 북한 군인으로 현재는 성락교회의 목사로 있습니다. 1968년 북한은 박정희 전 대통령 및 정부요인을 사살하기 위해 무장공비 31명을 남파했습니다. 무장공비들은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경찰들의 불심검문에 걸리게 되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군경과 대치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군경과 시민들이 이 사건으로 다치거나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무장공비들은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북으로 도주, 김신조만이 생포되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서울로 들어왔다는 것에 크게 진노하며 국방력에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 결과 예비군이 창설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최규식 경무관


1.21 사태를 빠르게 진압할 수 있었던 것에는 당시 종로경찰서 최규식 서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군을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군과는 다르게 경찰들은 불심검문으로 무장공비를 파악하고 재빠른 대처를 했기 때문입니다. 최규식 경찰서장은 북한군과 교전 중인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들을 지휘하며 무장공비와 대치하던 중 총탄을 맞고 돌아가셨습니다.

 

최규식 경무관은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공만 챙기려는 일부 사람들과는 다른 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공직자들이 모범으로 삼고 본받아야 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의 혼란을 막아내고 공직자로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을 뒤로하고 창의문으로 올라갑니다.

 

 

 

창의문


 

서울성곽 1코스의 시작점인 창의문입니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사소문의 하나로 서울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창의문은 태조 5년 1396년 축조되어 현재까지 옛 모습을 유지하는 유일한 문이기도 합니다. 창의문은 그리 큰 성문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광해군을 왕의 자리에서 내쫓고자 반정을 일으킨 인조의 군대가 창의문을 통해 사대문 안으로 진입하여 창덕궁을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인조반정은 병자호란의 원인이 되는 등 조선의 운명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창의문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조 이후의 왕들의 입장에서도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왕이 될 수 없었기에 창의문은 매우 중요하며 감사한 장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로 창의문에는 영조가 인조반정을 기억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감사하기를 바라며 성루에 반정공신 이름이 적힌 현판을 걸어놓은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의문 잡상


 

창의문 처마 위에 있는 잡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궁궐의 전각에는 10개의 잡상이 놓여 있는 것과는 달리 창의문 처마에는 10개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창의문은 사대문을 보조하기 위한 사소문으로 격이 떨어지기에 잡상의 수가 적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잡상에 대한 정확한 역할은 아직까지 알려지지는 않지만 중국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화재로부터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잡상은 대부분 정교하게 제작되지는 않았지만 처마 위에 잡상이 없다면 허전하지 않을까 싶네요.

 

 

창의문 목계


 

창의문 밖의 지형이 지네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창의문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목계(나무로 만든 닭)를 추녀 끝에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지네가 독을 가지고 인간에게 피해를 준다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창의문 너머의 안 좋은 기운들이 서울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네를 잡아먹는 닭을 형상화한 목계를 만들어놓고 성문 천장에는 새들의 우두머리인 봉황을 그려놓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미신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건축물에 의미를 담아두는 것은 전통 존중과 함께 백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여 편안케 하고자 하는 민본사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서울 성곽


 

서울성곽 1코스를 걷기 위해서는 꼭 신분증을 가져가야 합니다. 신분증 통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후 입장할 수 있습니다. 성곽길을 걸으면서도 사진을 함부로 촬영해서도 안됩니다. 정해진 방향으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곳이 군사시설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에 근접한 곳이기에 군인들이 이곳을 경계하며 군의 전략적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니 사진 촬영이 자유롭지 못함을 토로하기보다는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눈에 덮인 성곽길


 

창의문에서 올라가는 구간은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쉽게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몇 번의 깊은숨을 내쉬며 돌계단에 주저앉아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 나름대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자신의 체력을 측정하겠다고 무조건 앞만 보기보다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서 올라가는 것이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성곽에서 본 북한산


 

성곽을 오르면서 좌우를 살피다 보면 저 멀리 북한산의 모습도 보입니다. 북한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친 남성이 느껴집니다. 북쪽의 오랑캐로부터 조선의 한양을 지켜왔던 든든함과 함께 인왕산 북악산 등이 북한산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서울을 포근히 감싸안으며 500년의 조선을 묵묵히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모진 풍파로부터 지키며, 아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백악산


 

백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해발고도 342m에 불과하지만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서 우리나라 산 중에 '岳(악)'이 들어가면 매우 험한 산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칭찬해줍니다. '너는 오르기 힘들다는 악산을 또 하나 정복한 거야'라고 남을 듣지 못하도록 저만 듣게 칭찬해줍니다.

 

 

백악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서울 전경


 

백악산 정상에서 본 서울 시내의 모습은 조용했습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은 보이지 않고 한적한 모습만 느껴집니다. 서울 전망 명소라는 곳을 여러 곳 다니며 받은 느낌이 '서울이란 도시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서울 한 복판에서 어떠한 모습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을까? 

이래서 사람들은 산에만 오면 다 신선이 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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