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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문
오늘은 5대 법궁 중 가장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경희궁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몇 명의 중국인 가족들이 이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제가 경희궁을 둘러보는 동안 한국인 커플을 제외하고는 파란 눈의 외국인과 중국인들만이 이곳을 방문하여 관람하더라고요.

숭정전
한국인 중에서도 경희궁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경희궁에서 어떠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기에 경희궁을 찾는 이도 적습니다. 우리보다 외국인들이 경희궁을 더 많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밀려오는 창피함과 동시에 잊혀 가는 우리의 것에 대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초라해진 경희궁을 어떠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느끼며 갔을지 궁금해지네요. 경희궁 궁터가 축소되는 가운데 전각들은 이곳저곳에 팔려 다른 법궁과는 다르게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외국인들이 경희궁이 축소된 이유를 모른 채 경희궁을 보고 자신들의 나라로 간다면 많은 오해와 편견을 낳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숭정전
경희궁의 역사를 보면 광해군이 1623년 완공되어 경덕궁으로 불리다가 영조 재위 시절인 1760년부터 경희궁으로 불렸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많은 왕들이 이곳에서 지내면서 조선 후기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 시기 경복궁 중건에 경희궁의 전각이 쓰이고 궁궐로서의 기능이 많이 약화되 었지만 경희궁의 마지막은 일제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숭정전, 흥화문 등이 뜯겨 팔리면서 경희궁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 이곳에 서울 고등학교가 세워져 있다가 2002년에 들어서야 경희궁 복원공사를 통해 우리에게 경희궁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비운의 궁궐입니다.

경희궁의 옛 모습
위의 사진이 바로 경희궁의 옛 모습입니다.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전각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궁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경희궁의 모습과 비교해볼 때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줍니다.

숭정전
경희궁은 서궐이라 불리던 곳으로 동쪽의 창덕궁, 창경궁(동궐)과 마주 보는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면 서궐의 규모가 동궐과 비슷할 정도로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희궁에는 정전이었던 숭정전과 자정전 외에도 융복전, 회상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과 함께 수많은 전각들로 가득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웅장함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숭정전
숭정전은 광해군 10년(1618년)에 건립된 정전으로 조회가 열리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행사가 열리던 곳입니다. 그리고 27명의 조선의 왕 중에서 경종, 정조, 헌종 세분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현재 경희궁에 있는 숭정전은 옛 것이 아니라 복원된 것입니다. 실제의 숭정전 건물은 일본 사찰에 팔렸다가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숭정전에서 바라본 숭정문
숭정전에서 바라본 전경은 덕수궁에서 시청의 높은 건물들을 보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가장 큰 건축물이었던 궁궐이 이제는 가장 낮은 자세로 높은 빌딩에 둘러싸여 복잡한 현대인에게 휴식을 안겨주는 공원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숭정전 잡상
현재의 경희궁 터에는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교육청이 자리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과거의 경희궁은 서울역사박물관을 통해 기억되고, 조선의 앞날을 고민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 했던 고뇌들은 서울시 교육청에 이어져 인재 양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비록 경희궁은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못하지만 역사의 뒤로 물러나면서 그 역할을 나누어 준 것에 위안을 삼아봅니다.

자경전 회랑
자경전의 회랑을 바라보면서 왠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을 해보니 조선시대에는 길게 뻗어나갔을 회랑이 이렇게 가로막혀 제한된 공간 속에 머물러 있음에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혀버린 회랑에서 나라를 잃어버린 아픔을 보게 됩니다.

자정전
자정전은 1617년에서 20년(광해군) 사이에 건립된 편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열어 나라 일을 논의하던 곳입니다. 왕이 경희궁에 머물지 않을 때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숙종이 승하했을 때 빈전으로 사용되거나 선왕들의 어진(초상화)이나 위패를 보관하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자정전
자정전 전각 또한 일제에 의해 허물어진 것을 오늘날 다시 복원한 건축물입니다. 지금은 복원된 건물이기에 역사와 전통성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훗날 역사를 되살려 선조들의 얼을 이어가고자 했던 우리의 노력들은 후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리라 생각됩니다.
족집게 한국사
『족집게 한국사』 는 한국사시험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도서이다. 또한 시험 내 중요도를 표시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뽑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저자는 14년 간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토대로 단순 암기가 아닌 원인 파악, 비하인드 스토리 활용, 역사적 사건의 전체적 내용 요약표 제시, 사료를 통한 역사적 사실 접근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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