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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를 상징하는 택견 조형물

 

아마 제 또래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티브이에서 이소룡과 성룡의 영화가 방영되면 며칠 동안 동네 공터에 모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어설픈 쿵후를 흉내 내곤 했습니다. 남들보다 왜소했던 저는 남들보다 고수가 되고자 하는 꿈이 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무술 도장을 다니지 못한 저는 용돈을 모은 뒤 헌책방으로 달려가 당랑권 책을 샀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혼자 무술 수련을 하여 고수가 되고 싶었지만 사진으로만 나와있는 책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며칠 만에 꿈을 접어야 했던 추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무술은 할 줄 모르지만 무술 고수가 되고자 하는 동경은 갖고 있습니다. 격투기처럼 우람한 근육을 가진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것보다 영화의 고수처럼 평범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보다 더 우람한 사람을 순식간에 바닥에 눕혀버리는  무술 영화와 같은 현실을 꿈꿉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이종격투기를 시청하는 것보다 각국의 무술을 소개하거나 비교하는 동영상을  자주 감탄하곤 합니다. 당랑권 책을 사서 연습하던 어린 시절이 30년 전인데 아직도 가슴속 어딘가에 꿈이 남아있는지 가끔씩 덩치들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망등으로 만들어진 터널

 

어느 날 인터넷에서 충주 세계무술축제를 알리는 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기존의 여행에서 접하지 못했던 무술이라는 주제가 색다른 체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래서 2015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아닌 충주로 출발했습니다. 토요일 근무를 하고 출발하다 보니 충주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해가 기울어져 주변이 어둑 컴컴해져 있었습니다.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밤에도 많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에는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며 축제의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특히 충주 mbc어린이 합창단의 귀여운 춤과 노래를 보고 있자니 아빠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집니다. 그 외에도 재미있고 흥겨웠던 뮤지컬 '영웅의 노래'와 조명으로 빛을 내는 조롱박 축제도 멋있어서 가족들과 연신 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했던 야시장

1998년부터 시작되어 충주를 대표하게 된 세계무술축제에는 정말 많은 인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했습니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박수를 치며 빛의 축제를 즐기느라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는 세계무술축제는 여타의 축제보다 흥겹고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축제장에서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것은 야시장이었습니다. 야시장의 규모가 매우 커서 디스코 팡팡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새벽 1시가 지나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늦은 시간의 야시장이 재미있는지 보채지도 않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놀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아이들보다 먼저 지쳐버린 저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갖은 감언이설로 꼬신 다음에야 충주 시내의 찜질방으로 이동하여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무술박물관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샤워를 한 후 다시 찾은 세계무술축제는 어젯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밤새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아이들과 손을 잡고 체험을 하는 가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밤의 축제였던 어제와는 다른 차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연히 어제 저녁에 축제장에 도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무술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무술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자료들을 소장하고 구성했을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무술 사진

박물관에 들어서며 역동적이면서도 대륙별로 대표적인 무술을 보여주는 사진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맨 위에 자리한 택견의 모습은 강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의 무술 하면 태권도를 떠올리지만 수천 년간 한국인의 심신을 단련시키며 국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준 무술은 택견입니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던 택견이 보급되지 않고 맥이 끊길 뻔한 것을 신한승이라는 분이 1973년 충주에 택견전수관을 세우면서 후대에 계승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점차 택견을 접하고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며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충주는 택견을 중심으로 전통무예를 지키고 보급하는 지역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 무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메카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술연맹 본부를 충주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매해마다 많은 국가와 무술단체들이 참여하는 세계무술축제를 개최하여 국내 세계의 무술을 알리고, 세계에는 한국의 무술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박물관 내부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규모에 비해 내용이 빈약했으며, 사진과 설명을 적어놓은 패널 위주로 전시가 되어 흥미 유발을 일으키는데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무술 분류가 잘 되어있지 않았으며, 택견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다른 국가의 무술은 맛보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무술이라는 특정 주제를 가지고 활성화시키려 한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보통 지역축제를 가보면 다른 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포맷으로 운영되어 특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충주는 타 축제와는 달리 무술이라는 색다른 주제로 축제가 열리며, 무술박물관과 공원이 조성된 것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무술을 지역 축제로 발전시키며 자국의 무술을 지켜가려는 모습은 보기 힘든 소중한 움직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충주 세계무술축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택견의 중심이 되는 12가지 동작

무술박물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택견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후대에 전승되던 전통 무술입니다.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과 같은 제천행사가 있으면 선조들은 택견을 겨루며 흥을 돋웠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서도 택견을 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어 택견은 일상생활 속에서 선조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음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택견을 수박 또는 수박희라고 부르며 임금 앞에서 시합을 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무과 시험의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선조들에게 있어 택견을 익히는 것은 출세를 위한 방편이 되면서도 단오 같은 명절날 흥겨움을 이끌어내는 일상생활의 유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절 택견을 통해 한국인들이 심신을 단련시키며,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못마땅한 일제는 택견을 일절 금지시켜버립니다. 일본보다 강인한 정신을 지니고 체격이 더 컸던 한국인들은 35년간 식민지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한국의 정신을 계승하고 뛰어난 체력을 키웠던 택견은 일제에게 매우 위험한 무술이며 전통문화였을 것입니다. 다행히 일제의 눈을 피해 전국 곳곳에 택견의 명맥을 지켜온 분들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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