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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민속박물관

 

부산과 맞닿아있는 김해는 부산에 비해 작은 도시지만 삼국시대에는 가야의 도읍지로서 일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가야 연맹 왕국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이 잠든 김해를 방문한다면 제일 먼저 김수로왕릉을 다녀와야 합니다. 김수로왕릉 옆에 김해 민속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왕릉과 함께 방문을 해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해 민속박물관 내부

 

김해 민속박물관은 김해 지역의 민속과 농업에 관련된 유물과 설명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해지역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각지로 매우 맛있는 쌀을 생산하기로 유명하기에 벼농사와 관련된 많은 민속놀이와 농기구로 구성된 박물관입니다.

 

 

 

박물관 여러 농기구

 

우리나라를 여행하면 농업과 관련된 박물관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전국에 많은 농업박물관이 있기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하기에 더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많은 전통과 문화들이 농업과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농기구들을 통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로왕릉 숭화문

 

김해 민속박물관을 뒤로하고 수로왕릉을 찾아갑니다. 수로왕릉은 가야라는 연맹국가의 맹주의 역할을 하던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멸망한 여러 나라들의 왕릉과는 달리 수로왕릉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긴 시간 동안 일시적으로 수로왕릉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훼손되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살문

 

수로왕릉이 잘 보존된 이유로 가야가 신라에게 무력으로 멸망되지 않고 병합되는 과정 속에서 가야 왕족들이 신라 지배계층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일신라시대에는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삼국통일에 크게 기여한 김유신이 있었기 때문에 보존이 잘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하긴 했지만 체제가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고려의 지배층들이 신라 계승 의식을 표출했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고려 문종 때까지 수로왕릉이 잘 보존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가락루

 

그러나 고려 말 원 간섭기와 왜구의 침입 등으로 수로왕릉 훼손이 심해지자 조선 세종 때 재정비를 합니다. 그 후 선조 때 영남 관찰사 허수의 건의로 일반 능에서 왕릉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왜에 의해 도굴되면서 다시 훼손되었고 인조와 고종 때 보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왜에 의해 도굴당할 때 순장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역사교육에서 고대 국가 부여를 학습할 때 순장이 있었다고 배웁니다. 이런 교육은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순장은 부여라는 나라에서만 있었던 장례풍습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고대 장례풍습이기 때문입니다. 신라도 순장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기록을 본다면 옆에 있던 가야도 순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순장을 부여의 특수성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우리의 역사가 뒤처지지 않고 보편성을 지닌다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수로왕신도비

 

수로왕릉에는 3개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외형을 보면 세워진 지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석에 적혀있는 비문을 볼 때마다 읽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하면서 제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느낍니다. 언제쯤이면 비문을 읽고 해석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할 뿐 노력하지 않는 저를 보면서 '이래서 나답다'라는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숭신각

 

숭신각은 고종 때 가야의 역사와 현액을 받은 내용이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가야는 약 5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나라임에도 역사에서 많은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가야가 있던 시기를 삼국시대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500여 년 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교류와 전쟁을 했던 가야를 배제했기에 우리의 역사는 처음부터 어긋나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부여 멸망(494년), 가야 멸망(562년)의 시기를 고려한다면 오국 시대라는 표현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동북공정(고구려, 발해는 중국역사다)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속국이었다)에 맞서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국 시대 또는 열국 시대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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